
심장 근육이 정상의 두 배 이상 두꺼워지는 것만으로 경기 중 쓰러진 선수처럼 예고 없이 급사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계단 오르다 숨이 차면 그냥 운동 부족 탓으로 돌렸던 제 자신이 떠올랐거든요.
급사를 부르는 심장: 비후성 심근증이란 무엇인가
비후성 심근증(HCM, Hypertrophic Cardiomyopathy)은 좌심실 벽의 근육이 원인 불명으로 과하게 두꺼워지는 질환입니다. HCM이란 쉽게 말해 심장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져 혈액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정상 성인의 심실 벽 두께는 약 0.8~1cm 정도인데, 이 병을 가진 분들은 1.5cm에서 심한 경우 4cm까지 두꺼워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심장병이라 하면 혈관이 막히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후성 심근증은 혈관이 멀쩡해도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서 훨씬 까다롭습니다. 두꺼워진 근육이 좌심실 유출로(LVOTO)를 막기 때문입니다. 좌심실 유출로란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이 빠져나가는 통로를 말하는데, 이 길이 좁아지면 심장이 아무리 힘껏 수축해도 혈액이 온몸으로 원활히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호흡 곤란, 어지러움, 가슴 통증, 극단적으로는 실신과 급사로 이어집니다. 격렬한 운동 중 갑자기 쓰러지는 젊은 운동선수들의 사례 대부분이 바로 이 질환과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5년 이상 다른 병으로 오인하는 이유: 진단의 어려움
제가 이 병에서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이 병을 가진 분들의 절반 이상이 5년 넘게 다른 병원을 전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숨이 찬데 천식 진단을 받거나, 가슴이 뻐근한데 역류성 식도염 약을 먹거나,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아 신경과를 다녀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가슴 통증이나 두근거림은 협심증과 증상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경험한 환자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협심증 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방심했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처럼 '협심증이나 부정맥이 제일 위험한 심장병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비후성 심근증은 병명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의료진조차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단을 위해서는 심전도 검사와 함께 심장 초음파 검사가 핵심입니다. 심장 초음파란 초음파로 심장의 움직임과 혈류 방향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검사로, 심실 벽의 두께와 좌심실 유출로의 협착 여부를 파악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법입니다. 심장 MRI를 추가하면 더욱 정밀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급사 위험이 높은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심실 벽 두께가 3cm 이상인 경우
-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의 압력차(압력 기울기)가 50mmHg 이상인 경우
- 최근 6개월 이내 실신 경험이 있는 경우
- 가족 중 이 병으로 급사한 사람이 있는 경우
- 심실성 부정맥이 동반된 경우
약물 치료와 수술 사이: 어떤 선택이 맞는가
비후성 심근증이라고 모두 수술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좌심실 유출로 협착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베타차단제 같은 약물 치료가 먼저 시도됩니다. 베타차단제란 심박수를 조절하고 심장이 과도하게 수축하는 것을 억제해, 좁아진 통로가 더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약물입니다. 쉽게 말해 심장이 무리하지 않도록 속도 조절을 해주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약물로 조절이 안 되거나 증상이 심각해진 경우, 비후된 심근을 직접 잘라내는 심근 절제술(Myectomy)을 시행합니다. 인공 심폐기로 심장을 정지시킨 뒤 대동맥을 절개하고, 그 통로를 통해 과도하게 두꺼워진 근육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이 수술 과정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런 수술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걸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수년을 고통받았을 환자분들의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정맥이 동반된 경우에는 체내 삽입형 제세동기(ICD)를 가슴 안에 넣는 시술도 병행됩니다. ICD란 심장 마비나 심실세동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전기 충격을 가해 심장 박동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장치입니다. 경기 중 쓰러진 축구 선수가 몇 초 만에 다시 일어나는 장면, 뉴스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바로 그 장치가 몸 안에서 작동한 것입니다.
국내 심장 관련 질환 분류 및 진료 지침은 대한심장학회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으며, 비후성 심근증에 관한 최신 진료 권고안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대한심장학회).
30대 남성이 반드시 챙겨야 할 심장 검진 포인트
저는 솔직히 이 내용을 접하기 전까지 심장 초음파를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반 건강검진에 포함된 심전도 정도만 했을 뿐, '이상 없음' 소견을 받으면 안심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비후성 심근증은 심전도만으로는 놓칠 수 있습니다. 심전도에서 약간의 이상이 보여도 '고혈압성 변화' 정도로 해석되거나 아예 정상으로 판독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젊고 증상이 미미하면 괜찮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각 증상이 없는 30대일수록 정기적인 심장 초음파 검사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질환인 만큼, 가족 중 심장 이상이나 원인 불명의 급사 이력이 있다면 형제자매와 자녀까지 검사를 함께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세계심장연맹(WHF)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이며, 특히 젊은 층에서의 돌연 심장사 중 상당 비율이 비후성 심근증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심장연맹).
건강을 챙기는 방법으로 참고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계단을 오르거나 빠르게 걸을 때 숨이 비정상적으로 차오른다
-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림이 반복된다
- 갑자기 어지럽거나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가족 중 원인 불명의 급사 이력이 있다
- 운동 중 가슴 통증이나 실신 경험이 있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로 넘기지 말고 심장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비후성 심근증은 진단만 제대로 되면 약물이든 수술이든 관리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무조건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만, 모르고 방치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30대라면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1년에 한 번, 심전도와 심장 초음파를 함께 챙기는 것이 가장의 책임감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심장 초음파 검진 예약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반드시 심장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